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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이야기

영재아는 정서적 측면을 특히 고려해야하는 이유

영재의 특성중에는 과민성이 있다고 한다.

남들보다 조금 더 까다롭고, 조금 더 예민하고, 그래서 자극에 크게 반응하는 과민성.

다른 사람들은 넘어갈 수 있는 소음이나 맛, 시각적 자극 등이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인지와 자기 이해가 없으면, 정체성의 혼란과 자기를 문제아로 생각하여 끝내 자기를 부정하게 될 수 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지만 '영재'라고 하는 단어에서 드는 느낌은

'특별함, 고지능, 재능'과 같이 뭔가 조금 더 많고 높은 기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있어 보인다.

그 이유는 보통 '영재'라는 타이틀을 달고 미디어를 통해 혹은 주변에서 보여지는 사람들을 보면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거나 고학력자 혹은 꽤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잘 알고있는 영재들 중에 성공적인 업적을 달성한 사람은 역사를 돌아보아도 비율적으로 봤을 때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고지능 영재의 고통스런 생애도 적지않게 들을 수 있는데, 최근 서현역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연의 가해자 역시 한때 영재교육을 받은 고지능 영재였다고 보도되었다..

 

만약 내가 고지능자에 대해 찾아보고 알아보기 전에 이런 소식들을 들었다면 쉽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 그런 재능(특정할 수 없지만)과 잠재력을 갖고 발휘하지 않으면서 힘들게 살았을까?

내게 그런 재능(단지 나의 가벼운 추측으로 생각한)이 있다면 열심히 계발해서 활용했을텐데..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나도 미성취 영재 중에 한 명이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심리적 불안감에 살아왔었다.

그리고 태오를 키우면서 배우게된 사실은 '고지능 판정'이라는 것은 단지 원석을 발견했다는 것일 뿐이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어떻게 그 원석을 가공해나갈지에 대해서는 많은 도움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심지어 더 어렵고 정교하고 세심한 관리가 필요했다.)

 

태오에 대한 지능검사 이후에 여러 영재아 부모들의 고민들을 듣게 되었고

어릴 적 태오와 지금의 태오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민감성에 대해, 내가 잘못했거나 잘해서의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 고유의 기질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우울증치료과정에서 받게된 풀배터리 검사로 나 역시 태오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더욱 태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내가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사회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크게 누군가와 다툰적도 없었고, 갈등이 생기면 주로 내 쪽에서 상대를 맞춰주며 갈등을 해소한 적이 많아 나는 누구와도 잘 어울리며 살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29살까지만해도..

그 과정에서 내가 받은 심리적 고통은, 일반적인 모두가 경험할만큼의 고통이라 생각했고

일상 생활 중에 구역질을 한다거나 갑자기 터진 눈물로 스스로 당황한 적이 있던 것은 그저 내가 멘탈이 조금 약해서, 조금 예민해서 그런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나의 20년지기 친구가 다이어트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 나누던 중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너가 사회성도 좋고 누구와도 친해지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둔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엄청 예민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다른 사람이 무엇이 필요한지 눈치 빠르게 행동했기에 갈등이 없던 것 같고. 그래서 너가 살이 안찌나봐.'

 

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나의 기질을 부정하며 거의 40년 가까이 나의 과민함을 고쳐야할 문제점이라고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튀면 안되고, 남들처럼, 남들처럼 느끼고 그렇게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 나는 비정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민함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지 못한 것도 큰 영향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그 결과, 이렇게 더는 정말 죽겠어서,, 못살겠어서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간 첫 진료 때, 심각한 우울증으로 바로 약물치료부터 해야한다는 진단을 받을만큼 뿌리깊고 극심한 우울증과 불안증이 생긴 것 같다.

 

지금까지 나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내가 만약 '나의 과민성'을 '고쳐야 할 점'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하나의 기질'정도라도 이해하고, 그것은 나의 '잠재력'을 끌어올려줄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에 대한 믿음과, 그걸 토대로 사회에 대한 믿음 역시 지금보다는 나았으리라 생각한다.

나에 대한 부정이 결국 다른 사람에게 투영되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지능 판정은 양면의 동전 같다.

학습속도는 빠르고, 남들보다 조금은 수월히 성취를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로 인해 쉽게 올 수 있는 권태감, 무기력감도 있다. 또한 앞서 말한 예민함으로 오는 스트레스는 오히려 학업 저하를 불러오기도 해서 오히려 정말 필요한 때에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태오는 방송에 나오는, 유명한 영재들처럼 무언가 특별하게, 뾰적하게 튀어나온 재능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조심히,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의 불편한 자기 목소리를 아직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나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최대한 많은 표현방법들을 제공해주고자 한다.

(나의 경우, 제대로된 표현방법도 몰랐거니와 용기내서 말했을 때'너가 예민한거야. 참아.'라는 피드백을 너무 많이 들은터라 나의 감정 표현에 무기력을 많이 느끼며 자라왔다.)

 

'어른이된 영재들'이라는 책을 요즘 읽고있는데,

프랑스에 있는 학습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 대해 도움을 주는 기관에서 영재를 '얼룩말'로 표시한다고 했다.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특별한 무늬가 있는데, 다른 사회와 너무 달라 오히려 눈에 띄는..

그리고 말 종류 중 유일하게 인간의 손에 쉽게 길들여지지 못하는..

그럼에도 아름다운..

 

얼룩말이 토끼같아지고싶다고, 사자가 되고싶다고 어떻게 할 수 있다고 한들 행복할까..

자신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그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겠지..

얼룩이 마음에 안든다고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지금까지 '나는 왜 이럴까'에 대한 고민들을 '나는 이렇구나' 하며 하나씩 알아가려고 한다.

자세히 봐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고 말한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스스로를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겠다.

 

태오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와 같이 방황하는 인생을 살지 않길 바라며..